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주실 복 세 가지
- 예레미야17:7~8 -
 
서산뉴스

  시편115:9~13절에는 ‘여호와를 의지하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오고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는 말씀도 세 번 나옵니다.  

 

  이처럼 반복해서 말씀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범사에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순간마다 도움과 방패가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평상시에는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어려울 때 엎드려 도와달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상대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지난 두 주 동안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자들의 특징과 결과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자들이라고 하나님이 특징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과에 대해 사막의 떨기나무 같고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며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반대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주실 복이 무엇인지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물가에 심은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친 것과 같습니다.

  물가에 심은 나무는 가뭄하고는 거리가 멀고 설령 가뭄이 오더라도 뿌리를 강변에 내리고 있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수분이 공급되기 때문에 살아있고 생명력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때그때 마다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예비처(예비하신 곳), 또는 피난처가 나오는데 이런 처소가 있다는 것은 거기로 들어갈 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비처든? 피난처든?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가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보면 말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사람을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목회하시는 분들도 보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어려운 일을 만나면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에게 기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 재력도 있고 재산도 있는 분들이 있으면 그분들로부터 도움을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30대 초반 서울에 있을 때 어느 날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부자 집사님이 교회에 오셔서 등록을 하고 열심을 내셨습니다.

 

  그분이 사시는 집은 부자들이 사는 방배동에 90평 대 최고급 빌라였고 반포에도 50평대 아파트가 있었으며 여기저기에 땅도 많았고 헌금도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분에게 의지하려고 하고 말로는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는데 속으로는 저 집사님이 좀 해주시길 은근히 기대도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젊으니까 야망도 있었고 그런 재력이 있는 분들을 발판삼아 제가 더 크고 영웅이 되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그 집사님을 의지한 저의 모습을 발견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했고 그 첫 번째가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늘 푸르고 싱싱하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사람에 대한 기대 보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져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것이고 살아있는 나무는 언제나 푸르름을 자랑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뿌리를 강변에 내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계9:4절에서 사도 요한은 황충이가 나올 때 피해를 받지 않는 자들에 대해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들만 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계시록에 나오는 내용처럼 때가 돼서 하나님이 인을 치실 때 푸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뿌리를 생수(성령)에 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8)

 

  우리가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고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고 도장을 찍으시면 황충이로 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고 안전하다고 말씀하셨으니 인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성경에는 하나님의 인이 나와 있는데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지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므로 때와 법이 바뀌어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할례를 주장했던 바리새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생활을 통해 세례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인 치심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용어 자체가 생소한데다 세례를 받고 지금까지 교회생활을 잘 해 왔으니 천국에 가는데 문제가 없는데 무슨 인을 맞아야 한다고 하느냐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점은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드리며 주여주여 하고 있으면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2000년 전에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키며 양을 잡고 송아지 잡아 제사 지내면 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오신 이후로 하나님의 때와 법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는 어린 아이 신앙 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고 이를 위해 때를 따라 주시는 양식을 먹고 장성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단계가 어린아이로 있다 보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신앙으로 대환난을 이기겠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거나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누구시고 그 분이 오실 때 어떻게 맞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없는데 어떻게 맞이하겠어요?

 

  요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한동훈 위원장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그저께 금요일에는 당진에 왔고 시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만약에 한 위원장이 선거 유세차 당진에 오는데도 언제, 어디로, 몇시에 왜 오는지 미리 다 공지해서 시민들에게 알리고 왔습니다. 

 

  만약에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불쑥 온다면 누가 알고 거기로 나가겠으며 그런 식의 방문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막연하게라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로 예수님 재림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알아야 하는데 오히려 경계하고 거부감을 느끼고 있으니 재림을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성경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그들의 경건생활은 지금 우리가 발뒤꿈치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에게서 한 가지 문제점을 끄집어 낸다면 하나님의 뜻과 법과 때를 몰랐고 옛날 법만 고수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바리새인들 어디에도 다른 결함은 없습니다. 

 

  우리 신앙이 성장하고 끝까지 이기려면 내 힘 만으로는 불가능하고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늘 생수를 공급받아야 하며 이런 심령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십니다. 

 

  둘째, 더위가 올지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추운 것도 견디기 어렵지만 사막의 더위처럼 극도로 무더운 것은 고통이고 탈수현상이 와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열 체질이라서 그런지 추운 것 보다 더운 것이 더 싫습니다. 

 

  추운 것은 옷을 두껍게 입고 견딜 수 있는데 더운 것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옷이 금새 땀으로 젖어 버립니다.

 

  제가 웬만해서는 불평을 안하는 사람인데 한 여름에 땀이 줄줄 날 때는 더워 더워 하면서 가끔씩 불평을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 않지요? 

 

  욕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경쟁을 포기하며 높아지려고 하지도 않고 주어진 일만 하면서 살아가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면서 욕심, 염려, 걱정, 두려움을 완전하게 떨쳐버릴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면 어떤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 두려움을 제거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때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길들이기를 하시는데 그 중에 하나가 연단입니다. 

 

  히브리 민족이 광야로 나와 40년 동안 생활한 것은 ‘연단’하기 위해서 였고 그 연단을 통해 애굽에서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더 단단하게 만드시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런헤 광야에 나온 히브리민족은 광야생활을 못견뎌 했고 기회만 되면 애굽으로 돌아갈 궁리만 했습니다. 

 

  *사55:6~11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고 하시면서 “네 생각을 버리고 내 생각을 따르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연단이 유익한 것은 연단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잘못된 생각, 마음, 말과 행동을 고치고 하나님과 동떨어졌던 생각을 다듬기 때문입니다.

 

  시험과 연단은 다른데 ‘시험’은 자신이 잘못해서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욕심, 잘못된 말과 행동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이고 시험이라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연단’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 훈련하고 단련하시는 것이라서 지금 당하는 어려움이 연단이라면 끝날 때 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시험은 회개와 교정이 목적이고 연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목적이며 연단을 통해 불순물이 다 빠지면 가치가 올라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을 통해서 다듬어지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가치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더위는 우리가 처한 환경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은 수시로 바뀌는데 사람들은 그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더위가 올지라도 두렵지 않다고 말슴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오는 현상 앞에 두려워하고 굴복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서 현상을 이기고 본질을 지켜 내야 합니다. 

 

  세 번째, 결실이 그치지 않습니다. 

  잎사귀는 청청하고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으니 그 나무에는 결실이 풍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난 해 가을에 과일 농사가 잘 안됐는지 올해 과일값이 비싸다고 원성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 사과인데 사과 값이 너무 올랐다고 아우성입니다. 

 

  벼농사든? 과수농사든? 봄에 시작해서부터 가을에 수확할 때까지 순간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한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비는 내려야 할 때 적당히 와야 하는데 가뭄으로 타들어 간다면 그 농사가 되겠으며 꽃이 필 때 태풍이 온다던지? 전에 없던 병충해가 발생한다면 수확할 것이 없어집니다.  

 

  아마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리고 나서부터 가을에 수확할 때까지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농부들에게 결실이 그치지 않는다면 그 보다 더 신나는 일이 있을까요? 

 

  누렇게 익어가는 벼,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수원은 풍성함 그 자체입니다.  

 

  *계22장에서 사도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설명을 한 후에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2)고 축복의 멧세지를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열매를 1년에 한 두번 수확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면 달마다 실과를 맺힌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열매들의 세상입니다.

 

  열매는 과일이나 벼, 콩 이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열매도 있습니다. 

 

  롬6장에서 바울이 말씀한 것을 보면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가 영생이라는 말이고 이 열매가 있어야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데 열매는 예수님이고 그 열매로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열매라는 것은 어찌보면 결과입니다. 농부들이 1년 동안 땀흘려 농사를 짓는 목적은 열매를 억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1년 농사의 평가는 열매가 결과이므로 열매로 평가하는 것이고 그 열매를 수확해서 1년 동안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는 내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때 결실이 그치지 않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하나 결과(열매)가 좋을 때 그 열매를 얻기 위한 과정도 중요한 것이지 열매가 쭉정이이거나 별스럽지 않다면 그 과정에 문제가 있었고 과정도 다 무시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에 가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가 없다면 그 모든 과정도 다 무시당하고 쭉정이와 함께 불못에 들어갑니다. 

 

  결론으로 우리가 여호와를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열매이고 그것을 위해 물가에 심은 나무처럼 중단없이 생수를 공급받아 하나님이 찾으시는 열매가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시길 죽복합니다. 


기사입력: 2024/03/24 [15:36]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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