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받을 자들의 결과 세 가지
- 예레미야17:6 -
 
서산뉴스

 

  영국의 국왕이었던 ‘제임스 1세’는 성경을 번역한 특별한 왕이었습니다. 

 

  성경 번역본 중에서도 가장 원본에 가깝다는 킹 제임스 성경을 번역한 독실한 신자였는데 그는 매우 엄격해서 작은 범죄도 엄하게 다스리기로 유명했습니다. 

 

  한 번은 ‘암스트롱’이라는 좀도둑이 목장에서 양을 훔치다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때 암스트롱은 감옥에서 사형을 피하기 위해 묘안을 짜낸 후 간수를 불렀습니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몸,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싶소. 임금님께 내 뜻을 전해주시오”. 

 

  제임스 1세는 그 소식을 듣고는 “참 기특한 죄인이로구나. 그에게 성경을 주어라. 그리고 성경을 모두 읽은 후에 사형을 집행하라”. 

 

  암스트롱은 그날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나도 사형을 집행할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하루에 딱 한 절씩만 성경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계산해 보니 성경이 책으로 66권(구약 39권, 신약 27권), 장수도 1189장(구약 929장, 신약 260장), 절수로 3만1102절(구약 2만3145절, 신약 7957절) 입니다.

 

  이것을 하루에 한 절씩 50년을 읽는다고 하면 1만8250절 밖에 안되니 하루 한 절 씩 3만1102절을 다 읽으려면 85년이 걸립니다.  

 

  결국 제임스 1세는 “집에 가서 성경을 읽으라”고 풀어주었고 암스트롱은 그 후 새 사람이 되어 평생 봉사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사형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성경을 읽겠다고 했지만 성경을 읽다 보니 하나님의 역사가 개입했고 이것이 인생을 변화시킨 말씀의 능력입니다.

 

  구약성경 16권의 선지서는 거의 모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이 대부분인데 이유인즉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저버렸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는 저주 받을 자들의 특징에 대해 말씀을 들었고 오늘은 저주 받을 자들의 결과가 무엇인지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사막의 떨기나무 같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거역한 유다백성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사막의 떨기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사막의 떨기나무는? 풍성함이나 울창함을 기대할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나무입니다. 

 

  특히 사막은? 비가 오지 않으니 물이 없는 곳이고 어떤 식물도 살 수 없는 황무지입니다.

 

  거기에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린다고 하더라도 싹을 틔울 수 없고 혹시 어쩌다 떡잎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금새 말라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없으면 사막과 같아지고 그런 상태로 교회에 소속을 둔들 성장이나 결실이 있을까요?

 

  반대로 그다지 비옥한 땅은 아니더라도 때를 따라 단비가 내리면 그 땅에서는 씨앗이 싹을 내고 자라서 열매를 맺기도 하겠지만 사막은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신11:14절)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농사를 위해 유다 땅에 내리는 실제적인 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단비를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암4:7) 

 

  하나님이 때를 따라 제 때에 비를 주신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비가 멈춘다면 농사는 그만두고 사막으로 변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교회에 때를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없다면 사막교회가 될 것이고 설교자에게서 비소식이 없다면 그는 사막 목사에 불과합니다.  

 

  떨기나무는? 우리나라의 찔레나 산딸기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는데 가시덤불처럼 보잘 것 없고 볼품없는 나무이지만 모세 때문에 유명해 졌습니다. 

 

  *출4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 부르셨습니다. 

 

  이왕에 부르시는 것이라면 백향목 처럼 향기가 나고 근사한 나무를 통해 나타나시고 또 무화과나무나 감람나무를 통해 등장하셨다면 더 좋았으련만 가장 볼품없는 나무가 떨기나무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때를 따라 내려주시는 뜻과 법대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항상 푸르고 열매를 맺으며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막의 떨기나무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누구 하나 눈 여겨 보는 사람이 없는 보잘 것 없는 나무입니다. 

 

  다만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고 그 불꽃 가운데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모세가 만났습니다. 

 

  아무리 별 볼일 없는 떨기나무라도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면 그것은 축복의 나무가 될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이 없는 떨기나무는 그 자체가 저주이고 사막의 떨기나무이니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버림받은 나무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에서 떠나고 약속을 저버리면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보잘 것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둘째,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이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좋은 말을 많이 듣고 좋은 일을 많이 본다면 그는 그 영향을 받아 좋은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먹을수록 좋은 일을 기대하며 산다면 그는 마음에 안정과 평화가 깃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좋은 일이라는 것이 막연하게 기다린다고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 좋은 말을 많이 듣고 생각을 할때 좋은 일이 찾아올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며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겉사람은 후패할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고 육신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고장이 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본능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좋은 일이 많은데 일곱 인으로 봉했던 말씀이 때가 돼서 열려 증거 된다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인치는 역사, 재림이 나타나는 것은 성경이 이루어지는 멋진 일입니다.

 

  당연히 오매불망 기다려온 예수님의 재림은 최고의 선물이고 좋은 일인데 이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교회와 함께 살고 또 교회를 통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죽어서 가는 천국에 대한 소망도 있지만 더 크게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인들의 마음 속에 꼭 지녀야 할 두 가지 요소를 꼽는다면 ‘가억할 것’과 ‘기다릴 것’을 아는 것입니다.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모든 일입니다. 천지창조부터 예수님 초림 성령 보내심, 예수님 초림, 부활, 승천 등입니다. 

 

  *기다릴 것은? 성경의 약속대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약속이 318번이나 나오고 예수님의 재림은 성경의 결론이며 교회에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 기독교를 떠받치고 있는 세 개의 기둥은 십자가, 부활, 재림이고 이것은 기독교에만 존재하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성경의 결론한데 예수님은 두 가지 목적으로 오십니다. 하나는 상급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입니다. 

 

  먼저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그릇의 기름을 준비한 성도들에게는 신랑으로 오셔서 상급을 주십니다. 

 

  이것을 안다면 어떤 경우도 한 눈 팔지 말고 신랑을 기다려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막상 오실 때가 가까워지면 음녀에게 미혹당해서 엉뚱한 것을 쫒아 가는데 이들이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고 이들은 주님이 오셔서 심판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신부성도들을 데리고 천년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신랑이 오실 때 맞이하지 못하면 그에게 천년왕국은 없는 것이고 이것이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계18장은 바벨론이라고 설명하는 음녀를 심판하는 내용인데 2절에서는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절-“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오늘은 숙제가 있습니다. 집에 가셔서 계18:4절~19절까지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계18장은 바벨론이 심판당하는 장면이고 바벨론은 음녀이며 거짓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구구단처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통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때를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또 직분자라고 하면서 이 시대에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는 바벨론에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과 뱀에게 미혹당해 잃어버린 실낙원을 계시록에서 해를 입은 여자를 통해 큰 용의 미혹을 이기고 에덴을 회복해서 복락원을 이루시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다면 잘못 믿은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이 거하지 않는 광야에 거합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메마른 땅인데 거기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버려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광야는 물도 없고 농사도 되지 않기 때문에 잠깐 거쳐가는 곳은 될지언정 정착해서 살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특히 간조한 땅, 건건한 땅이라고 했는데 간조한 땅은? 바짝 메마른 땅이라는 말이고, 건건한 땅은 소금기 있다는 말이며 생명과 기쁨과 위로가 없는 곳입니다.

 

  땅은 그렇다 치고 교회가 간조하고 건건하다면 거기에 영적 생명이 있겠으며 믿음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의 심령상태가 이렇다면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겠습니까?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씀하는 이런 광야에 거한다는 것은 버림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메마른 삶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에서 말씀하는 것을 보면 히브리 민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를 통해 출애굽을 했습니다.

 

  출애굽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다음 인도함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광야까지는 나왔지만 거기가 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 모세를 따라 출애굽한 히브리 민족 60만3550명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과야 40년 동안 모두 광야에서 죽었고 가나안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없었고 약속의 땅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출애굽은 했고 광야까지는 왔지만 그들의 머리 속에는 애굽으로 돌아갈 생각만 있었습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민13장에서 열 두 정탐꾼을 보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 할 때 반응입니다. 

 

  열 명은 눈으로 보고 온 현실에 대해서 보고했고 두 명은 그런 중에도 믿음과 은혜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의 반응이 즉각 나타났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가나안 땅에 대해 믿음으로 보고한 두 정탐꾼을 돌로 치려고 했고 열 명의 말을 듣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예수님을 잘 믿었으면 약속의 땅인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야 하는데 교회생활로 끝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매장 당하고 맞아 죽을 말을 한 가지 한다면 오늘날 교회를 망치는 것은 교회를 등에 엎고 정치만 하는 목사들 때문입니다. 

 

  정치목사들이 괴물로 변해가지고 주의 이름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그들이 음녀이고 거짓선지자이며 저주 받을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정치꾼 목사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은 없고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치원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신앙의 목표가 하나님의 약속에 있고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있기에 장성한 신앙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가 되면 예수님은 재림하시는데 그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복이 있다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셨고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결론으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면 그 결과로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고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마지막 미혹을 이기고 주님을 맞이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사입력: 2024/03/17 [15:40]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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