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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1.24 [22:43]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 세 가지
- 신명기 6:4~7 -
 
서산뉴스

 

  이스라엘이 해마다 지켜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이고 맥추절은 보리를 수확하고 드리는 날이었고 유대인들은 이 날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로 지켰으며 초막절은 1년 농사를 마치고 드리는 감사절입니다.

 

  오늘은 2020년도 추수감사절인데 하나님께 마음을 담아 올려드리는 감사의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부터 시작하는데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지켜야 할 내용을 전달해 주셨습니다.

 

  그 후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말씀을 주셨고 또 예수님을 보내셨으며 사도들을 통해서 기준이 되는 말씀을 주셨고 받은 자는 주신 것을 지키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내용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에 대해 말씀하셨고 이것은 오늘 이 시대에 천년왕국에 들어갈 약속의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주시는 말씀을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이 무엇인지에 대해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라입니다.(5절)
  어떻게 사랑?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다 한다는 것은 남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마라톤 선수가 힘이 남으면 안되듯>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남은 것이 있으면 안되고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 어렸을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과 컸을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도 시대마다 중요한 것의 기준이 바뀌는데 구약에서는 율법이 중요했고 신약에서는 복음이 중요했으며 마지막 때는 예언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는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지만 성장하면 사랑을 주는 위치에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이치인데 요셉을 보면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형들이 구경도 못한 채색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순탄한 것은 아니고 고생을 수없이 했지만 나중에는 요셉이 성공해서 형들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자리로 올라섰고 이것이 성숙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 때도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 때도 있는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만 “사랑합니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준 기준이 있는데 요14: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그런 표현을 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도 우리를 믿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같은 의미로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어린 신앙은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만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린아이의 단계에서 벗어나 성숙하기를 원하시고 그 증거 중 하나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입증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하나님은 영이시라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말씀사랑은? 지나간 말씀이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인 예언의 말씀을 일고 듣고 지키는 것이 하니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 마음에 새기라입니다.(4절)
  새긴다는 것은 바위에 정으로 쪼아서 파내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쓴 글씨는 바람이 불거나 밀물이 들어오면 다 지워지고 없어지지만 바위에 새기면  비바람이 불어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집 뒤가 높지 않은 산인데 꼭대기에 올라가면 바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3~4년 선배되는 형이 저를 데리고 산꼭대기로 가서는 가방에서 망치와 정을 꺼내가지고 바위에 글씨를 새기는데 보니까 자기 이름 석자를 파내는 것입니다.

 

  몇 년 지나고 가보니 그 때 새긴 그 이름이 큼지막하게 그대로 있는 것을 보았고 그 뒤로는 안갔으니 모르겠지만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울산에 가면 통도사라는 유명한 절이 있는데 그리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은 산이고 왼쪽으로는 시냇물이 흘러가니 경치가 아주 좋습니다.

 

  그 길을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 산에 커다란 바위들이 많이 있는데 바위마다 글씨를 다 새겨놨고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셔서 돌판에 십계명을 새겨주셨을 때 모세는 엄숙하게 그것을 받아서 내려왔습니다.

 

  문제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숭배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해서 돌판을 집어던져 금송아지를 깨부수는데 이건 혈기가 아니라 의로운 분노였습니다.

 

  모세는 다시 돌판을 깎아가지고 시내산에 올라가서 거기에 새겨준 돌판을 가지고 내려와 법궤에 저장했던 것입니다.
 
  새겨진 글씨는 지워지지 않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판에 그렇게 새겨져야 하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판이 하나님의 계명판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귀로만 듣는 사람과 마음판에 새기는 사람은 차이가 많은데 귀로만 들은 사람은 다른 소리에 섞일 수 있고 빼앗길 수도 있지만 마음판에 새긴 것은 누구도 뺏어갈 수 없고 지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라는 것(잠7:3)입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언제 종식될지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화이자라는 미국의 제약회사에서 백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운반하는데 영하 70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니 실현이 가능한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교회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교회의 생명과 같은 예배는 축소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교회의 역할이 줄어들고 작은교회가 점점 무너지면서 대형교회 위주로 나가던 것 조차도 이제는 코로나로 어렵게 생겼고 교회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으로 살던 사람들까지 신드렁해질 수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약속의 사람들은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도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버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쫓아 갈 때 복의 근원이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약속의 말씀으로 기준을 잡고 지금 이 시대에 주신 예언의 말씀을 간직하는 것이 합당한 사람입니다. 

 

  셋째, 부지런히 가르치라입니다.(7절)
  누구에게? 자녀에게!! 여기서 자녀는 육신의 자녀도 포함되지만 믿음의 자녀를 의미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명령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잘 배워야 하고 그 다음에 배운 것을 토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 이 시대의 문제는 사람들 속에 절대신앙은 점점 사라지고 교회를 등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신앙은 형식화되고 약속의 말씀은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약속의 말씀을 배우는 것인데 핵심 뼈대와 골격을 갖추고 있는 요한계시록에 대해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징으로 돼 있는 계시록을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일곱 머리 열 뿔, 땅에서 올라온 짐승,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용...이런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조차 계시록을 성경적으로 가르치지 않다 보니 그 틈바구니를 이단들이 삐집고 들어와서 엉뚱한 내용을 전파하며 유혹하고 있는데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초대교회 때 신앙이 힘이 있었던 것은 재림신앙이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성경적 재림신앙을 가지면 계시록을 통해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를 알리며 나팔을 불어야 할 설교자들이 쉽게 갈 수 있는 된 일에 대해서만 설교할 뿐 될 일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니 교회는 더 처참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왜 교회들이 계시록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덮어버릴까요? 이사야의 예언대로 잠들게 하는 신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교회의 불침번과 같아서 영적으로 깨어 성도들에게 때와 징조를 알려줘야 하는데 설교자들이 영적 잠에 취해있으면서 행세만 하고 있으니 거룩한 것이 나오겠느냐 말입니다. 

 

  계시록을 하는데 있어서 주의할 것은 성경의 의도와 다르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단이나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계시록은? 하나님이 때가 돼서 열어 주셨는데 여전히 덮어놓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되고 또 주관적으로 계시록의 말슴을 열면 그 속에 생명은 없습니다.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아무 계란이나 병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수탉이 있어서 수정이 된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수정된 계란이라고 아무 때가 껍질을 깬다고 병아리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수정란이 어미닭 품속에서 21일을 지나고 껍질을 깨면 거기서 새생명인 병아리가 나오지만 그 날짜가 차기 전에 껍질을 깨면 그 순간 그 속에 있던 생명은 죽어버립니다.

 

  아무 때가 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기쁨의 좋은 소식(눅2:10)과 아름다운 소식(사61:1)이 나오는데 기쁨의 좋은 소식은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로 오신 소식으로 은혜시대 동안 증거된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식은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마지막에 해당하는 소식인데 좋은 소식은 그동안 듣고 배우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고 지금 시점에서 듣고 배워야 할 소식은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초림의 주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나훔 선지자의 말씀처럼 악인이 진멸되는 역사(나1:15)이고 심판하러 오십니다. 

 

  그래서 지금은 계시록의 예언을 가르칠 때이고 그 말씀에 사로잡혀 인치심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결론으로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듯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먼저 중요한 것은 시대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오늘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에 말씀을 새기며 그것을 부지런히 가르쳐서 견고히 만드는 것입니다.  

 


기사입력: 2020/11/15 [15:12]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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