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예루살렘성을 다시 세우시는 방법 세 가지-2
- 예레미야 33:8~9 -
 
서산뉴스

 

  위기가 다가오는데 위기인 줄 모르고 있으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요? 

 

  환난이 다가오는데 환난이 뭔지도 모르고 있으면 이길 수 있을까요?  

 

  지금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세상은 매우 어수선하고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며 덩달아 환율까지도 급등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경제를 아는 사람들은 멀지 않아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이 닥칠 것을 알고 달러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놓고 볼 때 중동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환율은 조금씩 치솟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좌파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돈을 퍼주기 때문에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점점 올라가는 것이 공식입니다. 

 

  더군다나 이번에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경을 통해 약 15~20조 원 정도의 돈을 뿌린다고 하니 경기는 더욱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며 소상공인들과 서민들은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게다가 이재명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까지 만드니 기업은 투자를 포기하고 성장하지 않는 구조가 되다 보니 앞으로의 전망도 그다지 좋지않아 위기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위기가 올 때 누가 위기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 위기를 극복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제대로 알고 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의 포위 속에서 주신 말씀이지만 그 속에 담긴 영적 의미는 역사의 끝자락에 서 있는 우리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계시록에 대해 모든 것이 다 끝나고 파괴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파멸이 아니라 '세상의 역사는 끝나고 드디어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시점'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는 요한계시록을 많이 강조하는데 우리가 주장하는 핵심은 파멸과 심판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시한부종말론이나 세대주의 주장을 보면 계시록이 이루어질 때 이 세상에는 난리가 나고 그것을 환난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환난을 교회 안에서 일어날 일로 또 심판은 교회심판으로 보기 때문에 접근방식이나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존의 질서를 끝내시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신다는 내용이며 우리는 거기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쓰신 요한계시록 강해집 제목이 ‘종말과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창세기가 있으면 계시록도 있는 것이고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이 오는데 그 마지막은 파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로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예레미야서를 보면서 ‘아하, 아버지는 성경 전체를 꿰뚫고 계셨구나’. ‘그러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계시록에서 끝을 말하고 심판과 파괴를 말할 때 아버지는 새로운 시작을 말씀하셨구나’ 하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한 시대가 가면 한 시대가 오는 것처럼 계시록은 하나님이 기존의 시대를 어떻게 끝내시고 새로운 시대를 여시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계시록의 내용속으로 들어가서 읽고 듣고 지키며 믿음의 고도를 높여야 하는데 맨날 그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며 속 사람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레미야에게도 시위대 뜰에 갖혀 있을 때 하나님은 회복을 희망으로 주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성을 다시 세우시는 방법 두 번째 시간으로 지난 주에 이어서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고 사하십니다.

  8절에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며...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성경이 말씀하는 회복의 핵심은 '죄의 소멸'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죄가 소멸되면 정결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담벼락은 죄인데 사람이 살면서 행위적으로 잘못해서 범하는 죄도 있지만 영적인 죄도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죄가 무엇일까요? 성령을 훼방한 죄, 바리새인들처럼 때를 분별하지 못한 죄,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법을 외면하고 어긴 죄, 이런 것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허공에다 대고 ‘주여 믿습니다’. ‘하나님 믿습니다’를 죽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믿음은 성경을 근거로 해서 지금이 어느 때인가? 하나님이 지금 주신 법이 무엇인가? 이런 것을 알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도 생기는 것이지 때와 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기겠어요?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아무리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선지자 노릇을 하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불법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한데 뜻을 어떻게 알아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고 성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계시록에 기록돼 있으며 계시록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과 약속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초림하셨을 무렵 바리새인들을 보면 금식하고 경건생활에 힘을 썼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그 결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앞장 섰습니다. 

 

  성경에는 정결케 되는 법이 있는데 정결케 되려면 정결법을 따라야 합니다. 

 

  레위기 11장부터 16장까지 나오는 내용을 보면 다양한 규례를 통해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깨끗하며 구별된 삶을 살도록 요구합니다.

 

  결혼식 날에 신부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은 흰색이 순결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겨졌고 또한 결혼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계시록에도 보면 흰옷 입은 무리가 나오고 세마포가 등장합니다. 

 

  계7장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무리를 보여주시는데 이 약속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을 예표합니다.(계7:9, 13~14)

 

  또 계19장에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가 나오는데 세마포는 성도의 의로운 행실입니다.

 

  의로운 행실이라는 말은 의로운 믿음이라는 것이고 이것은 때를 따라 주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믿음이며 이것을 인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결케 하시는데 구약에서는 제사를 통해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를 씻기고 죄 사함의 원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계시록에서는 어떻게 흰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신랑을 맞이하는 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 수준이 낮으면 알 수 없으니 성숙해서 계시록을 통해 신랑소식을 듣고 신부로 단장해서 신랑을 맞이하는 믿음생활을 하자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둘째, 예루살렘 성읍이 기쁜 이름이 되고 찬송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9절 상반절에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본문에 나오는 '성읍'은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와 만나게 될 실질적인 예루살렘성을 말합니다. 

 

  유다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은 특별하면서도 남다른 곳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성전이 있었고 성전에 법궤가 있었으며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다백성들이 성전을 소홀히 하고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등지게 되었을 때 바벨론을 보내서 예루살렘을 짓밟고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뼈저리게 느끼고 그들의 삶 속에서 성전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대적인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그런 것 같아요. 가지고 있을 때는 소중한지 모르다가 잃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유다백성들도 똑같이 성전을 가까이 두고 살아갈 때는 별로 소중한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압제와 조롱을 당하며 살다 보니 예루살렘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읍이 기쁜 이름이 되고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2026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회복해야 할 예루살렘 성읍은 과거 솔로몬 때 지은 그 예루살렘이 아니라 계시록에서 말씀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체인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온 천하에 드러내시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남은 일을 완성해서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사실상 하나님이 세우신 약속의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고 계시록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역사의 대미를 장식할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씨로 있고 유전자로 있다면 나이가 많던 적던, 건강하던 병들었던 그들을 통해 남은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약속은 예언이며 예언은 하실일이고 하실 일은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하나님의 남은 약속은 반드시 계시록에서 나오게 되어 있고 거기에서 주시는 약속을 받으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기까지 가면 그는 세상의 교회들이 바벨론으로 무너질 때 약속의 사람들은 오히려 더 굳건해 집니다. 

 

  지금은 존재감도 없고 어렵지만 그때 가면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으로 표시가 날 것이며 영원한 찬송과 영광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고 이 단계까지 갔다면 가난하다고 위축되거나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약속이 분명하니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현재 땅의 것을 먹으며 땅에서 살지만 하늘에서 주시는 양식을 먹으며 하늘에 속한 자들이고 앞으로 하늘에서 상 받을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새예루살렘성이 기쁨이 되고 그 성을 사모하며 사는 것이 은혜입니다.

 

  세 번째, 성읍에 베푼 복과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 떨게 하십니다. 

  9절 하반절에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두려워하며 떠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둘러싼 모든 이방 민족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유다를 고국으로 돌아오게 해서 다시 세우시고 풍성한 복을 주실 때 오히려 놀라며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실 '복과 평강'이 왜 이방 나라들에게는 '두려움과 떨림'이 될까요?

 

  이방 나라들이 볼 때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다와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폭삭 망했고 모든 것은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망한 줄 알았던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복과 평강’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유다는 이제 망했고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 것을 지켜본 이방나라들은 아연실색하고 초죽음이 됐겠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낮은 단계의 사람이지만 남들이 못보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볼줄 아는 사람들은 높은 차원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고 장래사를 볼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 일도 기록해 놓으셨지만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써 놓으셨으니 성장했다면 하실 일을 보고 그 일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출발하는 시작이 있어야 하지만 출발점에 머물러 있으면 안되고 다음 단계로 계속해서 발전해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은 몇백 배 더 중요합니다. 

 

  이방나라들이 볼 때 유다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으니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으로 알았는데 어느 날 보니 위풍당당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말입니다. 

 

  신앙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 성경도 보면 창세기보다 계시록이 더 좋구요. 다니엘서도 보면 1장보다는 2장이 좋고 2장 보다는 3장이 좋고 뒤로 갈수록 점점 좋아집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 그 끝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완성’이 기다리고 있고 이것을 알려주는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계시록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약속은 소망이고 약속은 될 일이며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듯이 지금도 우리가 영적인 혈통을 이어간다면 그 증거로 하나님이 이 시대에 주신 약속이 있어야 하고 약속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도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 목표를 위해 살지만 없는 사람은 되는대로 삽니다.

 

  길을 가는 것도 목표를 알고 가는 사람과 그냥 발 닿는 대로 아무렇게나 가는 사람은 발걸음이 다릅니다. 

 

  요한계시록은 신앙의 목표이고 목적이며 하나님이 이끌어 오신 모든 세상 역사를 어떻게 끝내시고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인지를 설명한 책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이 목표인 사람들은 이 땅에서 감정이나 기분대로 살지 않습니다. 

 

  우히려 하나님이 하실 일에 목적을 두고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니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결론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십니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며 거기서 드디어 복과 평강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을 보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날마다 가득하고 그것으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기사입력: 2026/03/24 [21:24]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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