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는 자들의 특징 세 가지
- 예레미야 22:13 -
 
서산뉴스

  

  어렸을 때는 부모가 한 분입니다.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는 아버지, 어머니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잘 성장해서 결혼을 하면 그때 또 다른 부모가 생깁니다. 

 

  어렸을 때는 그냥 엄마, 아빠 밖에 없지만 성장해서 결혼하면 또 다른 부모가 생기는데 며느리에게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사위에게는 장인 장모라는 부모입니다. 

 

  그 사람이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부모를 만나게 되고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그만큼 성장했다는 증거입니다.

 

  신앙도 똑같이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는 낳아준 부모만 알다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영으로 낳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기가 새로운 출발점이 됩니다. 

 

  우리교회가 요한계시록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계시록의 내용을 통해 성장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자는 것이고 성장하면 하나님이 그를 쓰십니다. 

 

  아무리 자기 딴에는 주님의 일이 하고 싶어서 ‘나를 도구로 쓰시옵소서’ 해도 어린아이라면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쓰시옵소서’를 하지 않더라도 성장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적합하면 불러다 쓰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고 성장한 증거는 하나님의 뜻과 때를 알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으로 화 있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불의로 그 집을 세웁니다. 

  불의는 사단의 속성에 해당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악인들은 대부분이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불의한 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예수님 때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불법을 행하는 불의한 자들이었고 계시록에서는 거짓선지자가 불의한 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불의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장 의로워야 할 유다가 불의로 그 집을 세운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는 새벽 큐티 시간에 롬4장을 통해 은혜를 받았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을 설명하면서 의롭게 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이고 믿음은 구호를 외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는 것이며 그 약속의 출처는 반드시 성경이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성경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전파해서 듣는 자들로 하여금 믿음을 가지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당연히 불의나 불법이 있어서는 안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7장에 보시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어느 날 예수님께 찾아와 하는 말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쫒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이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는데 이들이 불의와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했는데 불법이었다는 것은 때를 알지 못하므로 때가 지나간 것을 행했다는 의미이며 이들이 적그리스도로 연결이 됩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나 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

 

  주여주여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의 복을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니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성경적인 신앙이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는 성숙한 신앙입니다.   

 

  불의한 자들은 모든 것을 부정한 방법으로 행하며 신앙생활까지도 불의한 방법을 동원해서 불법을 행하면 그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둘째,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짓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고 그 분에게 부르심을 받았다면 공평해야 하는데 불공평합니다.

 

  불의한데다 불공평까지 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과거 기독교가 사회에 끼진 선한 영향력은 대단했고 학교, 병원, 사회단체 등 세상의 어떤 단체도 기독교가 이룩한 업적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랑과 평등에 대한 부분은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대해 차별이 없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생각으로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는(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떻습니까?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 됐고 믿음이라는 굴레를 씌워 순종을 강요하며 불공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데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세운 교회에 공평이 없다면 거기는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    

 

  교회는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고 오히려 교회 안에서 직분이 높으면 겸손하게 상대방을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지 군림하려고 한다거나 억압해서는 안됩니다.  

 

  정치적으로 진영을 보수(우파)와 진보(좌파)로 구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정당이 국민의힘이고 좌파정당이 민주당입니다.

 

  오래 전에 민주당을 했던 사람들은 평등과 공평을 내세웠는데 문재인 씨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많이 퇴보해서 민주당이 훨씬 더 불평등하고 불공평합니다.

 

  더군다나 이재명 씨가 민주당 대표가 된 이후로는 야당이 합의를 깨고 독재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가 후퇴했고 자기 살겠다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입법독재를 하며 특검법도 마구 내세우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의 민주당을 보면서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오직 이재명 살리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한한 종족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정치는 타협과 협상, 그리고 조율인데 현재 우리나라 정치는 그런 것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앞장서야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말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인데 1인 독재로 가면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것은 위선입니다. 

 

  3~40년전 축구를 보면 수비는 수미만 하고 공격은 수비가 보내는 패스를 받아 골을 넣는 방식이었으니 각 나라 국가대표에 걸출한 공격수 한 명이 있으면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축구는 포지션은 수비, 공격이 있지만 실제로 축구를 할 때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모든 선수가 유기적으로 연결해 누구나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발전했습니다. 

 

  교회도 모두 하나가 돼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유기적 관계가 돼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목사 한 사람이 스타플레이어가 되고 나머지는 구경꾼이 된다면 공평이 없는 것이고 그런 교회는 지금의 민주당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가장 공평해야 할 유다라는 나라가 공평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화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 이웃을 고용하고 품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데려다 일을 시켰으면 당연히 품삯을 줘야 합니다. 

 

  그것을 주지 않을 정도로 유다라는 나라에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약자를 무시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창30장에 야곱과 외삼촌 라반 사이에 품삯을 정하는 말씀(창30:28)이 나옵니다.

 

  야곱이 열심히 일해서 외삼촌의 소유가 번성하고 떼를 이루었지만 조카 야곱에게 일한 댓가를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요구한 것이 이제부터 태어나는 양과 염소의 새끼들 중에서 아롱진 것, 점이 있는 것, 검은 것을 가려 보니 몇 마리 되지도 않습니다.

 

  야곱이 요구하기를 외삼촌, 이제부터 태어나는 새끼들 중 아롱진 것, 점이 있는 것, 건은 것은 저의 품삯입니다. 

 

  그렇게 하기로 합의하고는 외삼촌 집과 야곱 집 거리를 사흘 길이 떨어지게 자리 잡았고 야곱은 아들들과 점박이 양 몇 마리를 데리고 터덜터덜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살기로 했으니 양과 염소가 발정을 하더라도 섞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라반은 속으로 “야곱 너는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야곱은 여전히 외삼촌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요? 그동안에는 어쩌다 아롱진 것 한 마리, 몇 년 만에 점박이 한 마리가 태어날까 말까 했는데 이때부터는 양이든? 염소든? 태어나는 족족 얼룩진 새끼가 태어나니 다 야곱의 소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외삼촌이라지만 태어나는 새끼마다 다 야곱에게로 갈 것만 낳으니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요?

 

  정상적으로 품삯을 줬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복이 아니라 화가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어떤 화가 있다는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8:13절에는 화, 화, 화가 나오는데 오늘 본문과 연결해서 말씀드리려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독수리가 공중으로 날아가며 땅에 거하는 사람들에 화, 화, 화가 있다고 세 번 외쳤는데 이 세 가지 화를 구분하면 첫째 화, 둘째 화, 셋째 화입니다. 

 

  먼저 첫째 화는 다섯째 나팔이고 황충이 등장하는 화입니다.(계9:1~6)

 

  다섯째 나팔을 불면 땅에 떨어진 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아 무저갱을 여는데 이때 거기서 연기가 나와 교회를 영적으로 어둡게 합니다.

 

  그래서 황충이의 역사는 연기를 통해 교회를 영적으로 어둡게 하고 분별을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아야 합니다.(계9:4)  

 

  인이란? 너는 내 것이라고 도장을 찍는 것인데 학개서 2장에서 스룹바벨을 인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스룹바벨이 인인데 스룹바벨이 한 일은? 70년 만에 포로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면 그가 할 일은 이 시대에 황충이에게 무너진 마음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틀어 보면 하나님 편에서 인은 세 가지로 치시는데!

 

  1)할례의 인(창17장)을 그 몸에 치셔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셨고

 

  2)성령(세례)의 인(엡1:13)을 마음에 치셔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셨으며

 

  3)하나님의 인(계7:1-4)을 이마에 치시므로 요한계시록의 약속을 믿고 황충이를 분별해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단계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화(황충이)를 이기는 길은 푸른 신앙을 가지고 이마에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둘째 화는 여섯 째 나팔이고 마병대가 등장하는 화입니다.(계9:12~19)

 

  마병대가 등장할 때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타나는 것은 절대 권력자로 생각하도록 두렵게 만들고 이 때 “사람 1/3이 죽임을 당한다“고 했으니 영,혼,육 중에서 영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화,화가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육신의 문제를 가지고 접근해서 결국은 영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시도합니다.

 

  마병대의 피해를 받지 않으려면 계시록을 통해 마병대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미리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무시무시한 마병대가 그 연월일시에 등장한다고 할지라도 영향을 받지 않고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영으로 미리 들었으니 영향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예비하신 예비처로 들어가기 때문에 마병대의 손아귀 밖에 있습니다.

 

  셋째 화는 대접 쏟는 심판입니다.(계16)

  대접은 첫째 대접에서부터 일곱 번째 대접까지 일곱 개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 계시록에 나오고 있고 그것을 미리 알고 미리 대비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 화는 교회를 심판하시는데 예수님 초림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처럼 구습을 좇아가면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고 새로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을 천년왕국으로 데려가십니다. 

 

  화 받을 자들에 대해 아모스 선지자가 6장에서 예언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암6:7~14)

 

  1)대적에게 먹힘을 당하게 하신다고 했고 2)모든 수고를 헛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저버리면 결국 하나님이 화를 보내셔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성경을 통해 미리 알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지금이 어느 때인지? 깨달아서 필요한 것은 취하고 때에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2~2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께 칭찬 받고 상급을 받아야지 책망 받고 심판을 당하면 잘못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로 쫒겨난 에덴동산을 회복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기를 원하십니다. 

 

  결론으로 화 있을 자들에 대해 말씀하신 특징과 내용을 각자의 마음에 담아 기억하고 추호도 화 있는 자들의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길로 달음질쳐 가시길 축복합니다.


기사입력: 2024/06/16 [15:06]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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