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이스라엘을 향한 예레미야의 기도 세 가지
- 예레미야18:20~22 -
 
서산뉴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넓은 의미에서 꼭 유지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다면 대신관계와 대인관계입니다.(독불장군으로 혼자 살 수 없음) 

 

  어떤 사람들은 대인관계는 필요 없고 오직 대신관계만 잘 하면 된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착각입니다.

 

  여기에 들어와 계신 분들은 하나님이 없어도 안되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안되는 분들입니다.   

 

  대신관계는 창조자요 주관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고 대인관계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약속에 대한 믿음이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 간에 신뢰와 덕인데 여기에 꼭 필요한 것은? 공감, 존중, 소통입니다. 

 

  소유가 많던? 적던? 배움이 많던? 적던? 그런 것과는 별개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최고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고 존중하며 소통하는 것도 잘 해야 어느 위치에 있던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돋보일 수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목회를 하는 교회들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 승천에 대해 증거하는 일을 매우 잘 하고 있고 그런 부분은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증거해야 할 때인데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고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해 잘잘못을 판단하시고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18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악으로 선을 갚으려는 자들이었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해치려고 구덩이를 파는 일까지 저질렀습니다.

 

  사람이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잘못되거나 망가져도 어느 정도껏 이어야 돌아서는 것이지 이렇게 하면 막가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나쁘게 한 것이 없고 하나님 편에 서서 선한 말만 했는데도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그들의 생각이 정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늘은 처녀 이스라엘을 향한 예레미야의 기도가 무엇인지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그 자녀들에 대한 것을 기도했습니다.

  대개가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라고, 고쳐주시라고, 해결해 주시라고, 함께 해 달라고 해야 하는데 지금 예레미야의 기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을 보면 “그들의 자녀를 기근에 내어 주시며 그들을 칼의 세력에 붙이시라”고 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들을 때는 그게 무슨 선지자가 할 수 있는 기도냐고 실망할 내용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죽을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이왕이면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오죽했으면 자녀들을 기근에 내 주고 칼의 세력에 붙이라. 즉 싹 다 죽이라고 기도 했겠습니까?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절대적입니다. 며칠 전에 후배와 만나 점심을 먹는데 그런 얘기를 합니다. 

 

  아들이 대학생인데 지난 주말에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아들을 위해 푸짐한 반찬을 준비해서 근사한 밥상을 차렸답니다. 

 

  모처럼 아빠, 엄마, 아들이 한 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얼마나 흐믓하고 좋았겠어요? 

 

  그 때 밥을 먹으며 후배가 아들을 향해 “아들아! 네가 오니까 반찬이 달라진다”하고는 웃었답니다.

 

  다음 날엔가 후배가 이번에는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 집을 갔더니 나이 드신 어머니가 아들이 왔다고 밥상을 한 상 차려 놓으니 아버지가 하는 말이 아들이 오니까 밥상이 달라지는구먼? 해서 한참을 웃었다고 합니다. 

 

  저의 어머니도 저에게 그렇게 하셨구요, 여기에 들어와 계신 모든 분들의 부모님들께서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하셨고 여러분들 또한 자식들에게 그렇게 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잘났던? 못났던? 유명하던? 안유명하단? 다 소중하고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레미야의 기도는 자녀를 파멸시키라는 기도를 하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예레미야를 해하려고 구덩이를 팠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이스라엘이 예레미야에게 한 일은 죽이려는 일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비단 예레미야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나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한 것이나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23:37~38)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레미야가 오죽했으면 자녀들을 죽이라는 기도를 했겠어요? 

 

  사람들의 마음이 그 정도로 악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예레미야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도 뜻을 훼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끝까지 참으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습니다. 

 

  가정에 자손이 다 죽는다는 것은 멸문지화하는 것처럼 이스라엘과 교회에 자녀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아내들에 대한 것도 기도했습니다.

  자녀들에 대해 기도한 예레미야는 이번에는 아내들을 향해 기도하는데 이 내용도 아찔하고 살벌합니다. 

 

  “자녀를 잃고 과부가 되며 그 장정은 사망을 당하며 그 청년은 전장에서 칼을 맞게 해 달라”(21절)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함께 자녀를 낳고 키우며 알콩 달콩 사는 것은 행복한 일인데 자녀를 잃는다면 엄마에게는 견디기 힘든 날벼락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뿐 아니라 과부가 된다는 것은 남편이 죽었다는 말인데 이렇게 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아내는 여자이고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할 때 마지막 때 교회가 영적인 자녀들을 잃고 영적 과부가 된다면 그 교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교회의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옆구리에서 하와가 나왔듯이 교회는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시는데 그 때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온 것이 교회입니다. 

 

  그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마가다락방에 성령을 보내 주셨고 성령을 받은 자들이 함께 모여 초대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고 그 몸을 지탱이고 유지하도록 성령을 보내 주셨으며 성령받은 자들은 세상으로 나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을 했습니다. 

 

  언제까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계12장에 보시면 해를 입은 여자가 나오는데 아이를 해산하려고 아파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때 또 다른 장면은 붉은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상황적으로 보면 피할 수 없고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그 순간 용의 입 속으로 쏙 들어가도록 돼 있어서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여자가 아이를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계12:5)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도 헤롯이 남자 아이들을 다 죽였고 그때 희생당한 갓난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도 바로 왕이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해서 애매하게 죽임을 당할 때 모세는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이룰 아이들은 하나님이 살리시고 책임을 지시며 매우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자녀도, 남편도 없다면 그 여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이 시대에 교회에는 영적 자녀도 있고 남편되신 그리스도가 살아 계셔야 하는데 없다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놀랍게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남편이 없는데도 자식이 태어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정상이라면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됐다면 자식이 태어날 수 없는데 이상하게 1년에 한명, 또는 2년에 한 명씩 자식이 꾸준하게 태어난다면 정상이 아닌 출생이지요.

 

  교회도 예수님이 남편으로 있으면서 자녀가 태어난다면 정상이겠지만 예수님이 없고 그 증거로 약속의 말씀이 없는데도 수많은 자녀들이 태어난다면 그런 교회를 계시록에서는 음녀교회라고 합니다. 

 

  계17장은 음녀에 대한 설명인데 4절에 보시면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절에는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성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살아있는 교회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남편으로 있어야 하지만 죽은 교회는 예수님이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없고 이런 교회가 음녀교회입니다. 

 

  음녀교회가 하는 일은 음행이고 여기서의 음행은 예수님의 약속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짐승우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녀를 잃고 남편도 잃어 과부가 된다는 것이고 예수님이 없는 교회는 있으나 마나이고 차라리 그런 교회는 없는게 낫습니다.

 

  세 번째, 그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군대는 하나님의 군대도 있지만 사단의 군대도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여기서 ‘그 군대로 졸지에 그들에게 임하게 해 달라’는 것은 악한 군대가 와서 그들을 다 정복하고 도륙하라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레미야를 보면서 지금까지 고정관념처럼 가지고 있던 생각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해서 무조건 참고, 무조건 이해하고 이유없이 손해나 피해를 당하더라도 참고 용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구나.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훼방하는 사람들 까지 용서를 구하고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니구나? 

 

  물론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있겠지만 지금 예레미야는 더 이상 참거나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민에게 보여줄 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하고 맞장 떠서 싸우라는 것은 아니지만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도록 기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렇게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22절 끝 부분에서 “그들이 나를 취하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치려고 올무를 베풀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는 일편단심으로 한결같아야 하지만 우리 주변의 상황은 수시로 변하고 또 어제의 동지가 갑자기 돌변해서 적으로 변해 공격하고 대적하는 세력들이 언제 출몰할지 모르는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 몸에는 면역이라는 것이 있어서 외부의서 병균이 침투할 때 그것을 공격해서 퇴치시키는 일을 합니다. 

 

  문제는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자기 몸을 지켜야 할 면역세포가 혼란을 일으켜 자기 몸을 공격해서 발생하는 병을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합니다. 

 

  외부의 적하고 싸워야 하는데 내부에서 자기 몸을 향해 가차없이 공격을 하면 몸에 병이 생겨 고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보면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미워하고 공격하며 증오하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고 자가면역질환에 걸린 사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마귀역사를 분별해서 대적하고 분쇄해야 하지만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를 향해서는 대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영의 역사인데 똑같이 사단의 역사도 영의 역사입니다.

 

  행2장에 보면 오순절 날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오시는데 약속의 사람들에게 홀연히 하늘로부터 임해서 영혼 살리는 일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단의 영이 임할 때도 홀연히  임하는데 약속이 없는 사람들에게 임해서 영을 사로잡고 죽이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영을 받을 것인지? 사단의 영을 받을지?를 결정짓는 것은 교회 다니느냐 안다니느냐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시대에 주신 약속이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초림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도 500여 명이나 되었지만 막상 마가다락방에서 약속하신 것을 끝까지 기다린 사람들은 120문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교회에 소속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다음 단계로 하나님이 때를 따라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고 참으며 기다리시지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으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세운 선지자였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한 처녀 이스라엘을 향해 다소 생소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 자녀들과 아내가 망하고 그 군대로 졸지에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사로잡혀 뜻대로 행하는 종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사입력: 2024/05/05 [18:27]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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