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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11.24 [23:43]
제사장이 될 때 준비할 것 세 가지
- 출40:12~13 -
 
서산뉴스

 

  하나님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 하면서 금향단, 번제단, 물두멍 등을 놓는 위치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내용이 40장에 나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말씀은 모세를 통해 형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시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사장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도록 부르시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과정을 통과한 자가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자들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물로 씻겨야 합니다.(거듭남)
  어디에서? 회막문에서...하나님은 장소까지 지정하셨는데 여기서 회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고 거기서 물로 씻기라는 것입니다.

 

  아무데서나 씻는다고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회막문에서 해야 인정이 됐던 것입니다.

 

  참고로 출애굽기를 읽다 보면 세 가지의 막이 나오는데 장막, 성막, 회막입니다.

 

  *장막은? 모세의 집이었고 거기서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지낸 장소였습니다.

 

  *성막은? 모세의 공적인 사역이 이뤄진 곳으로 거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회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하는 진 밖에다가 막을 짓고 모세가 은밀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특별한 장소였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의미있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막이 중요했다면 모세에게는 회막이 있었기에 하나님과 교제하며 가나안 땅을 향해 갈 수 있는 에너지가 충전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을 세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회막문에서 물로 씻겨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제물을 드릴 때에도 회막문에서)

 

  이런 제도와 정신에 따라 지금도 어떤 사람이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교회는 과정을 거쳐 세례를 베푸는데 원래의 세례란 온 몸이 물속에 쏙 들어갔다 나오는 침례인데 약식으로 머리에 물을 축여 세례를 행합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란? 내 몸이 물속에 들어갈 때 옛사람이 죽었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올 때 새사람으로 거듭났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해서 며칠 행진했을 때 홍해바다를 만났고 우여곡절 끝에 홍해를 가르고 건넜는데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홍해 사건을 세례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강을 건넜다는 것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물로 씻었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 지시하신 곳으로 가는데 이때 아브라함도 강을 건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밤에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로 법이 바뀌어서 할례가 세례가 되는데 중요한 것은 세례법이 나오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세례가 뭔지 알려주는 사람을 보내셔서 설명하고 증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실 때 반드시 어떤 사람을 통해 알려주시고 나서 그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할례법이 끝나고 세례법이 시작될 때 먼저 세례요한을 보내셔서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나타난 것은 할례시대가 끝났다는 말이고 법이 바뀌어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증거했으며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통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이후에 세례요한이 나타날 때까지 40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땅에는 선지자가 없었는데 놀랍게도 세례요한이 마지막 선지자로 나타나서 초림 예수님의 길을 에비하고 평탄케 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처럼 세례요한이 시대가 바뀌는 분기점에서 큰 일을 했지만 그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세례요한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고 세례요한이 증거하는 ‘내 뒤에 오실 이’에 대해서 귀담아 듣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홍수가 오고 전무후무한 심판이 오는데 방주로 들어와야 산다고 했지만 귓전으로 들었던 사람들과 똑같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세례요한이 증거하는 말을 주의깊게 들었던 베드로, 안드레 이런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말을 잘 들었고 그 결과로 예수님이 활동하실 때 만나서 제자가 되고 후에는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에 대해 요일5:6절에 보시면!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여기서 물은? 세례(벧전3:21)이고 피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를 받으셨고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마무리 하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둘째,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변화)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이고 직업을 나타내기 때문에 군복을 입으면 군인이고 경찰복을 입었으면 경찰이듯이 거룩한 옷을 입었으면 그는 거룩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대제사장들은 정해진 복장이 있어서 그 옷을 입고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롬13장-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했습니다.

 

  *엡4장-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계시록19장-그리스도의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성도의 의로운 행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옷은 때와 장소에 맞게 입을 줄 알아야 하는데!! *때에 맞게 입는다는 것은? 봄에는 봄 옷, 여름에는 여름 옷, 가을에는 가을 옷, 겨울에는 겨울 옷을 적절하게 입어야 정상입니다.

 

  만약에 한 여름의 삼복 무더위에 오리털 파카를 입는다던가 아니면 겨울의 한파에 반소매 옷을 입고 다닌다면 정상이 아닐 것입니다.

 

  신앙도 때를 알고 그 때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영적으로 #구약의 율법시대는 봄에 해당하고 #예수님 초림하신 이후에 펼쳐진 은혜시대는 여름이며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면 추수 때인 가을이고 #재림하시고 나서 이루어질 천년왕국은 겨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영적 계절은 가을 중에서도 늦가을에 해당이 되고 그것을 안다면 걸맞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옷은 믿음이고 믿음은 때에 맞게 갈아입어야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장소에 맞게 옷을 입는 것도 중요해서 일하러 갈 때는 작업복을 입지만 결혼식장에 갈 때는 정장을 하고 가야 하듯이 때와 시기를 분별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은 변화해야 하는데 초림 때 바리새인들은 변화하지 않았고 재림 때도 사람들은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하지 않고 철이 지난 것을 지키는 것을 믿음이라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사명)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사명을 부여하는 의미였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은 머리에 기름을 붓고 쓰셨고 신약에서는 기름 대신 머리에 안수하고 쓰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쓰시기 위해 목동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고 하나님이 사무엘을 쓰시기 위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는데 기름부음의 역할은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감동하는 과정이고 방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름 부으심의 역사를 알고 때를 따라 주시는 양식과 그 때에 주시는 사명의 기름을 부어주시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주시는 기름을 스가랴 선지자는 슥4장에서 금기름이라고 했고 주 앞에 모셔서기까지 영원토록 변함이 없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금기름으로 부어주시면 그는 서울에 있던 부산에 있던 제주도에 있던 상관이 없고 좋으나 싫으나 구애없이 주님 오시는 날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요일2:20, 요일2:27에 나오는 말씀처럼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게 되므로 그동안 알던 것은 희미하게 알았던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으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으니 하신 일+하실 일까지 다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신 일이란? 성경에 기록이 돼 있으나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것을 역사라고 합니다.

 

  *하실 일이란? 성경에 기록돼 있으나 그동안 이루어지지 않고 약속으로 있던 말씀들이 하나하나 열리면서 성취되는 것이고 이것을 예언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토대로 해서 예언의 신앙으로 나가는 것이고 이것이 기름부음을 받은 증거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통해서 볼 때 마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처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열 처녀 중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처녀의 공통점은? 둘 다 등잔을 들고 불을 켜고 있었습니다. 즉, 10명의 등잔에는 모두 그름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차이점은?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잔만 가지고 있었는데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잔은 물론이고 그릇에 기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기름을 부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시기적으로 기름부으심을 받은 종들이 나올 때입니다. (요일2:20,27)

 

  요한계시록에 보시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하나님께로부터 금기름을 받으면 그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언의 말씀이 열립니다.(계1:1)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 증거로 말씀이 열리는데 계1:1절 말씀처럼 ‘반드시 속히 될 일’의 말씀이 열립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마가다락방에 임한 성령을 통해 기독교 2천년의 역사 속에서 된 일과 하신 일을 전파했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가 되면 때를 알고 뜻을 깨달은 종들의 머리에 금기름부으셔서 될 일과 하실 일을 전하게 되고 이것이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될 일, 즉 예언이 왜 중요하냐 하면 계시록에 나오는 인, 환난, 재림, 심판, 천년왕국이 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는 것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비밀이 열립니다.(계10:7)
  그동안 은혜시대에는 천국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비밀을 열어주셨다면 마지막 때에 쓰실 종들에게는 하나님의 비밀을 열어주신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이고 이들은 다가오는 환난을 증거하며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오시는 길과 그 예수님을 맞이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름을 부으시고 쓰시기 때문에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름부으심이 중요하고 깨어있는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름부음을 받는데 지금은 시대적으로 금기름을 받아야 할 때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인치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을 잃어버렸는데 이것을 다시 회복하는 그 큰 일을 아무에게나 맡기시겠어요? (다윗=합당)

 

  결론으로, 지금은 시기적으로 마무리하고 완성 할 때가 되었으니 그 일을 할 사람을 찾고 찾으신 후에 일련의 검증 과정을 거쳐 합격하면 하나님의 인을 치셔서 심판하는 일(철장권세)과 천년왕국을 건설하는 일(새로운 창조)에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에서 주시는 제사장이 될 때 준비할 것 세 가지를 기억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일에 쓰임받게 되시길 축복.


기사입력: 2020/11/08 [15:37]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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