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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2.28 [03:03]
마지막 때의 신앙자세(2)
- 배드로전서4:8~10 -
 
서산뉴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읽는데 분량을 많이 정해서 읽던지 아니면 적게 읽던지 중요한 것은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간파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읽고 어떤 사람은 1년에 2독, 3독을 해도 그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장을 읽더라도 그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땅에는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여러 종교들이 있는데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핵심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했을 때 반성하도록 지도합니다.

 

  특히 기독교는 다른 종교보다 높은 도덕성을 가르치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회개하고 돌이키게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 정도에 머문다면 다른 종교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인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는 가르침에 있어서 다른 종교와 차이가 없다 보니 차별성이나 우월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종교통합이니....이러면서 섞이고 있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독교는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당연하고 더 중요한 하나님이 예정하신 계획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것을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해 세우신 것이 교회이고 기독교입니다.
  
  오늘 이 시대 교회들을 보면 선교사 보내고 구제하고 전도하며 열심을 다 하는 것은 장점이지만 그 보다 우선해야 하고 몇 배 더 중요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마지막 하나님의 남은 계획을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이고 계시록은 예언의 말씀인데 거기에 관심이 없다 보니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종교 수준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규모도 작고 존재감도 없지만 노아처럼, 모세처럼 누가 알아주던, 안알아주던 그런 것은 무시하고 하나님을 겨냥해서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알고 믿음 지키자는 것입니다.   

 

  지난 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한 마디로 깨어 있으라는 것이었고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마지막 때의 신앙을 어떻게 잘 지킬 것인지에 대해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서로 사랑하라.
  여기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조건이 붙어 있는데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했고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마22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사랑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첫째 되는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 주신 것이 요14:21절에 나옵니다.

 

  *요14:21-나의 계명을 가지고...

 

  계명이란? 꼭 지키도록 요구된 규정이라는 말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계명을 지키려니 계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려니 성경으로 들어가야 하더라 말입니다.  

 

  계명을 우리 식으로 바꿔 말하면 예언의 말씀이고 예언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둘째 되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고 이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고 이웃의 죽을 영혼을 예수로 살려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22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이 율법의 완성인데 초대교회 때 유대인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율법을 지켰지 율법의 완성인 사랑으로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계2장에 에베소교회가 나오는데 그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이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였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 있는데 어렸을 때 먹는 것과 커서 먹는 것이 다르고 어렸을 때 하는 말과 커서 하는 말이 다르며 어렸을 때 생각하는 것과 커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것도 믿음이 어릴 때와 장성했을 때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고 말씀을 받는 것에 있어서도 깨닫는 것이 다르듯이 사랑도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은혜시대에는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우리를 살리신 그 사랑을 받았다면 앞으로 환난 때는 성숙한 어른으로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고 그 일을 이루어드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가 완성의 단계이므로 이런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62장에 나오는 헵시바 쁄라의 사랑을 받게 되고 이것이 하늘과 땅이 결혼하고 하나님과 사람이 결혼하는 큰 사랑입니다.

 

  이 날이 되면 하늘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신랑이 되시고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품은 믿음의 사람이 신부가 되는 최상의 사랑이 펼쳐지는데 이 때가 바로 천년왕국입니다.(계20:9)

 

  사실 사람과 사람의 성숙한 사랑도 의미가 있지만 성경의 결론은 하나님과 사람이 결혼하는 것이고 이것이 창세기1~3장에서 잃어버린 실낙원을 계20~22장에서 회복하는 복락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계시록에 다 설명하셨는데 그 계획을 모르다 보니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을 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서로 대접하라.
  대접하는 자세는 원망하지 말고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어느 날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셔서 구출해 내시는데 유월절을 지키고 무교병을 먹으며 430년 동안 머물렀던 애굽 땅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상황적으로 보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베풀어주신 은혜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홍해바다를 건너 광야로 나왔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품고 또 다른 도우심과 은혜를 기다렸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광야에 나와 좀 불편하면 원망하고 투덜댑니다.

 

  어차피 자기들이 잘해서 출애굽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신 일이었고 또 다른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이번에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번번히 원망입니다.

 

  원망한다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미숙한 어린 아이라는 말인데 이들이 원망한 것을 보면 자기들이 잘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면서 주신 분에 대한 감사함이 조금도 없었고 모세 탓으로 돌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원망이 아닌 감사가 있어야 광야를 이기고 가나안 땅에 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수시로 얼마나 감사하는지 테스트 하시는데 이때 동원하시는 것이 불편함, 억울함, 초라함....이런 환경을 만나게 하셔서 그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대접하는 일에 앞장서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형성도 잘하며 이런 사람들이 광야를 극복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천사를 대접했더니 소돔성이 유황불로 심판 당할 것을 알려줬고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대접하므로 가뭄의 피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대접하면 하나님이 더 큰 것을 알려주시고 피해받지 않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셋째, 서로 봉사하라.
  봉사의 태도는 선한 청지기같이 하라고 했는데 선한 청지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고 그렇게 봉사하라는 것입니다.(일방적으로 한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가 세 번 나옴.)

 

  봉사는 그동안은 교회에서나 했는데 요즘은 봉사활동이 보편화돼서 학생들도 봉사활동 점수를 받아야 하고 직장인들도 봉사를 많이 합니다.(좋은 현상)

 

  은혜 받은 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하나님을 위해 살게 돼 있고 주인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 봉사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20년 동안 일해서 재산을 많이 늘리고 봉사했지만 외삼촌은 야곱의 수고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최종적으로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면서 양떼를 분배하기로 할 때 야곱이 제안하기를 흰둥이는 다 외삼촌 것이고 얼룩이, 점박이가 태어나면 그것은 야곱 것으로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라반이 볼 때 양은 점박이가 나올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야곱이 가져갈 것이 없을 것이라고 안심했는데 웬걸요?

 

  그때부터 태어나는 양은 거의가 점박이, 얼룩이 이런 것만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외삼촌 라반을 위해 20년 동안 충성 봉사한 것을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셔서 고향으로 돌아갈 때 부자가 되어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청지기로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를 안하면 제털 뽐아 제구멍 막기 밖에 못하지만 봉사하면 하나님은 그 수고를 기억하시고 몇 배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봉사는 때로는 귀챦고 성가시고 손해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가치있는 일이고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고 이런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며 서로 대접하며 서로 봉사하므로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하고 거룩한 일에 쓰임받는 종들이 되시길 축복.

 


기사입력: 2020/02/09 [20:42]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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