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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10.15 [20:02]
복을 구하라
- 이사야65:16 -
 
서산뉴스

  동물들은 본능만 가지고 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복을 구하거나 받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복이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를 알기에 구하고 도달하는 일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물론 사람은 당연히 복을 구해야 하고 복을 받아야 하지만 그 복이 어떤 복이냐 하는 것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리고 그 다음에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자기가 주인으로 착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며 사는 사람과 자기가 주인인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은 구하는 것이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무엇을 구하느냐를 보면 그의 소속이 하늘인지? 땅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먼저 하늘의 복을 구하고 신령한 복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입니다.

 

  사65장에는 먹을 자와 굶주리는 자, 마실 것과 목마를 것, 기뻐할 자와 수치를 당할 자, 노래할 자와 울며 통곡할 자에 대해 비교해서 설명한 후에 오늘 본문으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구하라’ 시리즈 마지막 시간으로 ‘복을 구하라’인데 어떻게 구하고 누구에게 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복을 구해야 할 대상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바람이 있다면 이왕이면 듬뿍 복을 받고 싶은 마음일 텐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복을 더 원한다고 보입니다.

 

  그 증거로 제가 어렸을 때 보면 숟가락에도 한문으로 복 자를 새겼고 밥그릇 뚜껑에도 복, 밤에 덮고 자는 이불에도 복을 새겼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도 복이 오는 것이 글씨를 새기고 복을 구한다고 모든 복이 다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조상들이 쌓은 덕이나 베푼 은공이 있어야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고 하신 말씀을 통해 볼 때 거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1편은 누가 복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말씀인데 “악인의 꾀를 쫒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라고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좆아 과실을 맺는 것처럼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결과만 보고 결과만 가지고 말하면서 ‘형통한다더니 왜 불통하냐’고 따지는데 이런 사람은 형통에 필요한 조건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있는데 모든 것은 다 조건이 맞으면 거기에 맞는 결과는 필연으로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바퀴벌레가 생길 조건이 되니까 생겼고 귀뚜라미가 살아갈 조건이 맞으니까 거기서 사는 것이며 부부싸움을 할 조건이 생겼으니까 싸우는 것이지 조건이 없는데 그런 일이 생기나요??

 

  복도 마찬가지라서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복이 임하는데 대개의 사람들은 조건을 맞출 생각은 하지 않고 억지를 부리면서 복을 달라고 구하기면 하면 복을 받는 줄 생각하는데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복을 주는지 알고 그 대상에게 구해야 하는데 복을 주시는 분은 우리를 만들고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을 시작하면서 “복을 구하는 자들은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구할 것이요”라고 했으니 이게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복을 구하는 자들은 다른 데서 구하지 말고 오직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복은? 말은 하나지만 때를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구약에서의 복, 신약에서의 복, 계시록에서의 복이 다르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복=신28장-
  *신약의 복=마5장-8복-
  *계시록의 복=계1:3-

 

  그러면 지금은 구약의 율법시대는 아니고 신약의 은혜시대도 끝났으며 이제는 계시록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으니 우리는 그때 주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의 인도함을 따라가는 것이 합당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복은 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것을 통해서 오고 예언의 말씀은 약속의 말씀이며 약속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마지막 때 복을 구하는 사람은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구해야 합니다.

 

  신앙이 진리중심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진리, 예수님도 진리, 성령도 진리, 성경도 진리이기 때문이며 세상은 순리를 말하지만 하나님은 진리를 말씀하시는 이것이 하나님의 차별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이 진리로 나타난다면 오늘 우리의 신앙이 진리중심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세상의 순리가 땅의 이치라면 성경의 진리는 하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은 순리의 사람이 아니라 진리의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입니다. 
 
  둘째, 맹세의 대상도 진리의 하나님입니다.
  아무데서나 맹세하지 말아야 하고 거짓 맹세도 불가합니다.(무언가 맹세를 한다는 것은 어린 아이가 아니라는 것)

 

  맹세라는 단어의 뜻는? 임무나 약속을 꼭 실행하거나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이름 석자 걸쳐놓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나 우리가 받은 영적인 목표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만약에 노아가 방주를 지으라는 목표를 받았는데 열심하지 않고 소홀히 했다면 그는 하나님의 계획인 방주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도아는 방주에 대한 명령을 받았을 때 환경을 보면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겠다고 힘든 일들을 극복하면서 나갔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그의 각오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것이 있다면 저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이고 그 말씀을 약속으로 받았다면 그 목표를 이루겠다는 견고한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하나님께 맹세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연약하기에 늘 맹세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거든요? 행사장에 가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합니다.(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자꾸 이렇게 맹세를 하다 보면 그게 자연스럽게 교육이 돼서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사람이 됩니다.

 

  신앙도 하나님 앞에 나오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이 약속과 목표로 세워지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다짐하며 나가는 것이 하나님께 맹세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목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앞두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일을 감당하는 것인데 마지 못 해 하는 것이 아니라 노아의 자세로 임하자 말입니다.

 

  무언가 하나님과 관련된 큰 일을 맡은 사람들은 내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기 위해 자꾸 물어보고 다짐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므로 거룩한 일에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맹세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맹세라는 것은 실체가 있어야 맹세가 되는 것이지 허공에다가 맹세할 수는 없쟎아요?
 
  진리의 하나님은 본질이고 사실이며 그 분은 때가 되면 그 분이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므로 그분의 계획과 목표를 성경을 통해 깨달았다면 그 일을 이루는 사람으로 살자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표가 내 목표가 되는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고 목표가 같아진다면 동지가 되고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니라”.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맹세하는 자는 이전 환난이 잊어지고 숨겨지니 환난을 이기고 극복한다는 말씀입니다.

 

  환난이라는 고난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좋아졌다는 말이고 숨기신다는 것은 쓰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종들은 하나님이 숨기셨습니다.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숨기셨고 다윗도 양떼를 돌보는 목동으로 감춰 놓으셨다가 때가 되니 사무엘을 보내어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마지막 때 쓰시려고 숨겨놓으신 최대의 민족이 욕단족속인데 수천년을 동쪽 해 돋는 곳에 숨겨 놓으셨다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드러내서 쓰실 것입니다.(셈족연구소=대한민국이 셈족의 후예.)

 

  결론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신 것을 안다면 그 분이 주시는 것을 받는 사람이 돼야지 그 분이 주시려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내게 필요한 것을 날마다 요구한다면 그는 진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은 부르신 분의 뜻을 깨닫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터득하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들은 그 뜻을 위해 살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언제나 내 방식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종들이 되시길 축복.



기사입력: 2019/09/29 [14:34]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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