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예루살렘성을 다시 세우시는 방법 세 가지-1
- 예레미야33:6~7 -
 
서산뉴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때가 지난 옛것을 지키는 것에 비중을 두다 보니 새로운 것을 무조건 반대했고 그 결과 옛 시대(구약)가 끝날 때 옛사람들도 함께 역할이 끝났습니다.

  

  물론 옛것도 처음 하나님이 주셨을 때는 새것이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고 때가 돼서 하나님이 새로운 것을 주실 때는 새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 초림하셨 때 바리새인, 유대인, 제사장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주신 새 법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마24장에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종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그 시대에 주시는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들었던 말씀은 매우 절망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읍은 바벨론 군대에 함락되었고 하나님은 도움의 손길을 보내지 않은 채 오히려 진노하시고 죽이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루살렘성에 희망은 보이지 않았고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절망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이 잘못했을 때는 가차 없이 채찍을 가하고 징계도 하시지만 포기하거나 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이 아브라함이고 ‘히브리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성경에서 ‘히브리’라는 말은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사건과 연결됩니다. 

 

  즉, 히브리 사람은 민족의 명칭 정도가 아니라 ‘강을 건너온 자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창14:13절에서 아브라함을 ‘히브리 사람’으로 부른데서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의 원어는 이브리(עברי, Ivri)였고 뜻은 ‘건너다’, ‘지나가다’이며 의미는 ‘강을 건너온 자’, ‘통과한 자’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온 역사적 사건에서 나온 것입니다.

 

  히브리인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세우신 민족이고 약속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깔려있었고 이것이 희망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시는 방법이 무엇인지 세 가지를 깨닫고 은혜를 받겠습니다. 

 

  첫째,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십니다.

  6절에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하나님은 아프게도 하시고 고난의 웅덩이에 몰아넣기도 하시지만 치료하고 고치시며 낫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병이 들었거나 몸이 아픈 분들에게 치료하고 고쳐서 낫는다. 이제는 살 수 있다는 말은 최고의 소식일 것입니다. 

 

  목회하는 제 친구가 있는데 10여 년쯤 전에 장모님이 암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는 검사를 하러 다니고 의사와 만나 얘기를 들으니 앞으로 몇 달 못사신다는 말을 듣고 사모님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우리 엄마 생명을 연장해 주세요. 길게 바라지도 않습니다. 앞으로 딱 1년만 더 살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는데 4~5개월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그 사모님이 하나님께 원망이 생기더랍니다. 

 

  10년, 20년 더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딱 1년인데 하나님이 그 기도도 들어주시지 않으셨고 그래서 처음에는 원망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땅에서 사는데 젊을 때는 아픈게 뭔지 모르고 살다가 50쯤 지나면 그때부터 몸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하고 걱정을 하게 됩니다.

 

  또한 요즘처럼 암이 많고 심장이나 뇌혈관 질환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이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에게 하나님은 치료하며 고치시고 낫게 하신다고 하면 귀가 번쩍 뜨이겠지요?

 

  과거에 기도원들이 잘될 때 어느 기도원에서 병을 고친다고 하면 전국에 있는 중환자들이 거기로 다 모여들었습니다. 병을 고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에 치료하고 고치시는 것은 맞지만 먼저 그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빨리 찾아서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면 그들이 처한 상황은 겉으로 드러난 전쟁의 참상만이 아니었습니다. 

 

  우상숭배로 인해 영혼과 공동체 전체가 모두 깊게 병들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상처를 그대로 두지 않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때 얼마나 기뻤겠으며 희망이 생겼을까요? 

 

  하나님이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것이 지혜이고 도리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장수하고 오래 산다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사람이 자연사 할 때는 병으로 죽는데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보다는 어떻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실 개인이 죽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치유는 히브리 민족에게 나타난다는 것이고 이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그래서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신다'는 표현은 일시적인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고 온전하게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성경에는 ‘여호와 라파’가 나오는데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당연히 육체의 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고 그것도 필요하지만 사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고통과 질병이 사라지고 완전한 치유가 이루어져 하나님과 영원히 산다고 하는 이 약속은 훨씬 더 큽니다. 

 

  저는 계시록을 보면서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얼마나 큰지를 발견하고는 창세기부터 말라기, 마태복음을 거쳐 유다서까지 65권에 담긴 내용보다 계시록 한 권에 들어있는 내용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년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십시오. 자세히 들려다 보면 설명 하나하나가 엄청난 거쟎아요? 

 

  왕권과 변화체 이런 것도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놀라운 내용들입니다. 

 

  *계21:4절-“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지금까지 이런 일이 있었나요? 오직 계시록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이 주실 은혜입니다. 

 

  *계22:2절-“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의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과일나무가 달마다 열매를 맺는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엄청난 복이지요? 

 

  저는 최근 몇 년 동안 손주들이 예쁘게 크는 것을 보면서 일시적이지만 이 땅에서 건강하게 살면서 손주들이 자라는 것을 오랫동안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계시록이 강조하는 이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왜냐하면 손주들도 하나님이 주셨고 계시록이 이루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을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에게로 임할 때 그 영향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브리 민족이 우상을 숭배할 때는 바벨론을 붙여 고통을 주셨지만 그런 가운데 깨닫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나타내십니다.

  오늘 읽어드린 말씀에서 "평안과 진실의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라고 강조하셨는데 이 말은 회복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것은 단순히 아픔이 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 빈자리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채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평강(안)은 샬롬인데 이것은 불안과 초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누리는 내면의 평강을 의미합니다.

 

  성실(진실)은 거짓과 우상숭배로 무너졌던 삶의 체계가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다시 세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풍성함은 인색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것에 있어서 넉넉한 은혜를 예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하나님이고 여전히 지금도 그 약속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주에는 제가 진노와 심판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은 맞지만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도 알고 믿음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나이가 70이 되었어도 아직 손주가 없는 친구들이 있는데 저는 손주가 셋이나 있으니 저를 부러워합니다. 

 

  세 명의 손주 중에서 첫째가 손자라서 제가 자주 운동도 데리고 가고 놀아주기도 하는데 첫 손주니까 첫정이 들어 얼마나 예쁘겠어요?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고 싶고 언제봐도 사랑스러운데 아직 어려서 말썽을 부리지 않지만 중고등학생 쯤 돼서 사고를 치고 다닌다면 그때는 야단을 치고 혼내기도 하겠지요? 제가 아들들한테도 그랬으니까요.

 

  손자 입장에서는 할아버지가 자기를 예뻐만 하고 사랑만 하는 줄 알았는데 혼내시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운한 마음도 가지겠지요?

 

  그러나 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아이들이 지나가며 장난을 치던, 사고를 치던 관련이 없으니 혼낼 일도 없고 간섭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들이나 손자가 그런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개입하고 관여해서 잘잘못을 가리겠지요?

 

  하나님도 똑같이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까지 사랑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잘못에 대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만 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왜 심판하시는지 알고 믿자 그 말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하나님을 알고 믿음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신앙이 성장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람들이 계시록을 말할 때 '심판'과 '종말'의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성실하심(신실함)과 그분이 주시는 완전한 평강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이 하나님의 평강과 성실함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보시면! 

 

  *계1:5절-“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계19:11절에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하신 모든 일을 결코 취소하지 않으시고 이런 그의 성실함이 우리가 누릴 평강의 법적 근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실행력"으로 나타나고 평강은 "그 성실함의 결과로 주어지는 고통 없는 영원한 안식"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아울러 이런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평강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 계시록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주시는 평강과 신실함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되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포로를 돌아오게 해서 다시 세우십니다. 

  개인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어려움을 당하면 좌절하고 낙심하며 주저 앉지만 그때 하나님이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세워주시면 금새 힘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고 기쁘겠어요?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지금 그 말씀을 하신 것이고 회복의 정점은 '신분의 회복'과 '재건'입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우상숭배로 인해 바벨론에 붙잡힌 사슬을 끊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처음과 같이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에 좋았던 모습, 즉 우리 본연의 정체성을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강조하는 '포로의 귀환과 회복'은 요한계시록에서 인류와 피조물 전체의 '궁극적 해방과 완성'으로 연결됩니다. 

 

  이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연결 고리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려면 먼저 바벨론의 수명이 다하거나 무너져야 합니다. 

 

  이 말씀이 계18:4절에서 바벨론을 설명한 후에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신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은 계시록의 바벨론이 무너지는 때가 오니 하나님의 사람들은 바벨론에 사로잡히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는데 앞에서 여러 번 설명 드렸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바벨론은 음녀이고 음녀는 거짓선지자인데 이들이 나와서 활동하는 무대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본질을 알고 분별하는 것이 중요한데 바벨론이 나타난 것이 보이면 가차없이 박차고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셔서 히브리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70년이 차면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은 고향이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잃어버린 실낙원을 계시록에서 복락원으로 회복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계21: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라는 구절은 구약의 회복 약속이 어떻게 최종적으로 실현되는지를 선포한 말씀입니다.

 

  결국 바벨론 포로를 돌아오게 하는 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고 흩어진 백성을 한 곳으로 다시 모으시겠다"는 성경 전체의 거대한 주제가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설명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제가 예레미야서에서 눈을 뗄 수가 있겠어요? 계시록의 내용이 예레미야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입니다.

 

  결론으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치료하겠다, 내가 풍성하게 하겠다, 내가 다시 세우겠다!"

 

  우리가 할 일은 성경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담대하게 나가는 것입니다. 

 

  전쟁이 발발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의지하며 소망 중에 살아가는 믿음의 장부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사입력: 2026/03/15 [13:48]  최종편집: ⓒ 서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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